4월 19일입니다.

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)
이제 간신히 마흔을 지난 저는 태어나기도 전인 60년대를 기억하지 못합니다.
아니, 유년기였던 70년대도 거의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.
제 기억의 실질적인 시작은 80년대부터입니다.
그리고 지금은 2010년대,
그러나 이렇게 기억이 부족한 저도 확실히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.
어째서인지 '낯 간지러운 표현'으로 변질되어버리긴 했습니다만,
그리고 종종 그 본래 의미와는 동떨어져
비하나 멸시의 뜻으로 사용되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만,
제 짧은 기억만 가지고도 제 살고 있는 곳이 이전에 비해 '민주화' 되었다는 것이죠.
무슨 기관이라는 자들에게 끌려가면 고문을 받는 게 당연하던 시절,
아무런 권한도 없이 그저 여당 지구당의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
길가던 고등학생을 끌고가 팔을 부러뜨려놓아도 어떤 항변도 할 수 없었던 시절
(제 고교시절 친구녀석이 실제로 당한 일입니다)
그런 시절을 실제로 겪었던 저로서는
'민주주의'라는 말이 갖는 의미가 절절이 가슴에 맺혔었는데,
왜 지금은 그 말이 이리 우스개처럼 사용되게 되었는지 슬프기만 합니다.
결국 저희들 자신의 잘못이겠지요.
아무리 설명해줘도 직접 겪어보지 못하고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.
더구나 그게 역사연구자들이 객관적일 수 있을만큼 충분한 시간이 흐르지 않은 때라면
직접 겪고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살아있음에도, 더더욱 거짓과 왜곡이 판을 칩니다.
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가려 감추려하고, 제 이익은 내놓기 싫어하는 법이라
잘못을 저질렀거나 그 잘못의 과실을 따먹은 자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까지는
오히려 더 진실을 깨우치기 힘든 것이지요.
이승만의 양아들이 사죄를 했다 합니다.
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하는 건 분명 아름다운 모습입니다.
하지만 진정한 사죄라는 건 그저 '잘못했습니다'라는 한 마디면 족합니다.
거기에 '그래도 잘한 부분도 있으니'라는 말이 섞여있다면 그전 절대 사죄가 아니지요.
그런 말은 사죄를 해야 하는 자들이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,
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용서를 해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.
그런데 그런 코흘리개 어린애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일들이
문명이 극한까지 발달했다는 21세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습니다.
하기야 박정희 따위가 훌륭하다고 강변하고,
80년 광주의 일이 폭동이었다고 주장하는 넋나간 인간들이 수두룩한 시절입니다.
십여년 전만해도 이러지 않았는데,
역시 가지고 쥔 자들의 꾸준한 세뇌작업은 무섭습니다.
그러더니 이젠 이승만이 4.19에 나름 공로가 있다는 웃기는 소리를 해대는 자들이 생겨났더군요.
자칫 이마저도 십수년쯤 지나면 그리 생각하는 게 당연해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.
그토록 갈망했던 민주주의라는 게,
저런 추악한 자들이 제멋대로 헛소리를 내뱉을 수 있게 해주기 위한 건 아니었는데!
하지만, 아무리 헛소리라 할지라도 떠들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
진정한 민주주의임을 알기에 분노와 슬픔을 눌러참아야겠지요.
그래서 당신들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.
그들에게 보장해주는 권리가 무엇이건 상관없이,
저희 후대들이 제대로 성공했다면 이미 그게 헛소리임을 확실히 다들 알 수 있게 했을 텐데
전혀 그러하지 못했으니까요.
물론 저는 인간이 지금처럼 불완전한 존재로서 몰락하지 않고,
언젠가는 분명 완성될 것이라 믿습니다.
그렇기에 지금 저 추악한 자들의 왜곡과 세뇌작업도
시간이 흐르면 결국 진실만이 남아 빛날 것이라 확신합니다.
그러나 지금 당장은,
바로 저 자신이 지금 이 때와 장소를 구성하는 일부분이기에,
당신들께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송합니다.
태그 : 4.19


덧글
Niveus 2011/04/19 08:43 #
...이승만이 419에 대한 공로라면 이게 있겠죠.불법 선거를 강행, 획책해서 시위를 위한 불시를 던져줬(...OTL)
불주먹 2011/04/19 23:40 #
안녕하세요, 이브닝 신문사입니다. 매주 블로그면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글을 올리고 싶습니다. 이 포스팅의 편집과 게재를 허락한다면 띄어쓰기 없이 '이글루스로보는블로그세상' 태그를 달아주세요. 감사합니다.
捨石 2011/04/19 23:44 #
저는 개인입니다만, 신문사라면 어쨌든 기업 아닌가요?글 내용 중에 단순히 4.19 얘기만이 아니라
이승만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박정희, 80년의 광주 등까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.
이런 부분을 전혀 삭제없이 그대로 게재할 수 있다면 허락하겠습니다만,
그게 아니라면 사양하고싶군요.